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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좋게 보시는 분들이 별로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 분들이 교회 문밖만 나가면 무신론자 분들보다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지신 분들보다도 도덕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금욕주의가 기본인데 더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돈에 있어서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성직자들에게 부는 그들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해나가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고, 도리어 성직자들의 위신과 평판을 높여 주는 데 기여하는 아주 바람직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목회 사역을 방해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목사님들도 자신의 재산을 투자해서 이윤을 확득하는 것은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청교도들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긴 것은 자신이 가진 부에 안주해서 그 부를 누리며 육체적인 욕망들을 채우는 일에 몰두하면서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영위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룩한"삶을 추구하는 것에서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즉, 청교도들이 부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본 것은 부 자체라기보다는 부에 안주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위험 때문이었습니다.

 

개신교에서 경계 하는 것은 게으름 입니다. 왜냐하면 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계속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을 어느 정도 축적을 하면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돈을 벌어 오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고 여행만 다니거나 골프치러 다니거나 하는 일들은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로 금욕주의와 이윤을 추구해도 된다는 이 두가지 사상은 자본이 축적되게 하는 동기가 됩니다. 신교도들은 부자가 되어서도 일을 했습니다. 자신이 열심히 했던 일에 자신이 벌었던 돈을 투자 해서 더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내어 부가가치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이 '근대 자본주의'가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참고 막스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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