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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를 읽고 감명깊은 구절 - 제5편 고자장구상

출처:이기동의 맹자 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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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고자장이다. 이름이 참... 입에 달라붙지는 않은데 고자라는 맹자가 살던 시대의 학자인 것 같다. 맹자가 고자하고 나눈 이야기들이 써있다.

 

한장 한장 읽다보면 내가 뭘 그리 잘못하여 이리도 마음이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알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 또한 불안이고 불안이 사라지면 고통이 사라지는 것 같다.

 

'밝힌다'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데 어두운 곳을 밝혀서 그 곳을 지나갈 때 부딪히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가 맹자를 읽는 이유이지 싶다. 장애물이 별로 없는 곳도 앞을 볼 수 없다면 쿵쿵 부딪히기 쉬우나 아무리 장애물이 많은 길이라도 밝혀서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부딪히지 않고 길을 갈 수 있다.

 

 

제10장

자연상태에서 사람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기가 먹고 입고 쓸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쓰고 그 외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교환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준다고 해도 별로 반기지 않는다.

 문명이 발달하여 갖고 싶은 물건이 많아지고, 그 물건을 돈으로 살 수 있게 된 뒤에는,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게 되고 돈을 벌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돈의 노예가 된다. 돈의 노예가 될수록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돈을 갖고 있지 않았을 때에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양심을 지키지만, 돈을 갖게 되어 좋은 집에서 사는 안락함과 예쁜 여자들의 시중을 받는 즐거움을 맛볼수록 점점 더 돈을 좋아하게 되며, 돈 없는 친척이나 친구들을 돕는 입장이 되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돈을 필요로 하게 되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양심까지도 파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나도 스터디를 하면서 돈을 한두푼 만지게 되니까 크게 달라지는게 없어보여도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여 순수한 마음을 일부 잊어버리고 기대하는게 생기게 된다. 흠 *.*

 

 

제11장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놓아두고 말미암지 아니하며,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불쌍하다. 사람은 닭과 개가 나간 것이 있으면 찾을 줄을 알지만, 마음을 놓아버린 것이 있으면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없다. 그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인은 남을 나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의 상태이므로, 사람의 마음이라 하였고, 의는 인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도리이므로, 길에 비유하여 사람의 길이라 한 것이다.

 인을 가지고 의를 실천하는 것이 참다운 삶이며, 거기에서 진정한 행복이 찾아지는 것인데, 그 참다운 삶을 놓아두고 육체적인 존재로 전락하여 서로 경쟁함으로써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고 있으니 슬픈 일이다.

 사람이 육체적인 존재로 전락하면 물질적인 가치만을 추구하게 된다. 집에서 기르던 개나 닭이 없어지면 찾으러 다니지만, 참으로 가치 있는 사람의 본마음을 찾을 줄 모르는 것이다.

 학문이란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본마음을 다시 찾는 것이며, 학문의 길이란 그 본마음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제12장

다섯 손가락 중에서 엄지손가락, 집게손가락, 가운데손가락, 새끼손가락 등은 다 이름이 있지만 네 번째 손가락은 이름이 따로 없으므로 무명지라 한다. 탕약을 저을 때나 쓴다고 해서 약지라고도 하지만 비교적 용도가 적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은 별로 용도가 없는 무명지가 하나 구부러져 펴지지 않으면 펼 수 있는 의사를 찾아 어디라도 가지만, 마음이 정상이 아닌 경우에는 바로잡을 줄을 모르니, 이는 분별력이 없는 것이다.

 

 

제13장

사람들은 오동나무나 가래나무를 기를 줄 알면서 몸을 기를 줄 모르니 사려 깊은 일이라 할 수 없다.

 분별 없는 사람들이 몸을 이르는 방법은 음식을 먹어 물질적으로만 기르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 고귀한 까닭은 그 몸이 양심을 실천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니, 몸을 제대로 기르기 위해서는 양심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14장

사람의 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인데, 몸만을 보존하고 마음을 보존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마치 손가락 하나를 고치려고 허리를 망치는 돌팔이 의사와 같다. 따라서 몸만을 보존하는 데 급급하여 음식을 밝히는 사람은 천박한 사람이다. 우리말에서 밥을 밝히는 뜻의 '밥보'에서 '바보'라는 말이 유래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마음을 보존하지 않으면 입으로 먹고 배로 소화시키는 것이 단지 자기의 몸을 위하는 것이 되지만, 마음을 잘 보존하면 진리를 실천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양심을 실천하는 사람의 몸은 양심을 실천하는 도구이므로, 음식을 먹는 것은 몸을 보존하기 위한 것도 되지만, 근본적으로는 양심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 된다.

 

 

제15장

똑같은 사람이지만, 양심을 밝혀서 실천하면 군자가 되고 육체적 욕구를 충족하는 데 주력하면 소인이 된다. 다 같은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은 양심을 밝혀서 실천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육체적 욕구를 충족하는 데 주력하게 되는 것은, 생각하고 안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생각하는 능력을 잘 발휘하여 참다운 것이 무엇인지,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내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눈을 물체를 볼 수 있는 기능이 있고,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인데, 몸이 양심을 실천하는 도구로서 역할을 할 때 눈과 귀는, 양심을 실천하기 위해서 보고 양심을 실천하기 위해서 듣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고통고의 소리를 들으며 구제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하여 육체적 욕구를 충족하는 데 주력하게 되면, 아름다운 옷과 맛있는 음식과 훌륭한 집이 눈과 귀의 본래 기능을 마비시킨다.

 아름다운 옷과 맛있는 음식과 훌륭한 집을 가지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혀 눈과 귀가 멀게 되면, 불쌍한 사람은 보이지 않고 고통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더 좋은 옷과 밥과 집은 자꾸자꾸 있기 때문에, 그 것들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눈과 귀를 현혹하고 사람의 마음을 끌고 다닌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것들을 구하기 위하여 평생을 끌려 다니다가 생애를 허무하게 끝마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은 잘 생각하여 허무하지 않은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분별하고 큰 뜻을 확고하게 세운다면,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려는 욕심이 그 큰 뜻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야 대인이 될 수 있다.

 

 

제16장

 사람이 양심을 상실하고 남과 경쟁하는 삶을 살게 되면,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데, 남보다 높은 자리라고 하는 것은 원래부터 있었던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맹자는 이를 인작이라고 한 것이다.

 인은 남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의 본마음이고, 의는 그 본마음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원리이며, 충은 본마음에 입각한 진실한 마음이고, 신은 본마음을 지속적으로 보존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선은 남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모두 본마음을 실천하는 방법과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남을 나 처럼 사랑하고 아끼면 남들도 나를 좋아하고 따를 것이므로, 나는 여러 사람의 추대를 받고 저절로 높은 자리를 차지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인자임을 위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면 사람들은 그를 싫어하게 된다. 그 결과 그를 제거할 것이므로, 그는 결국 높은 자리를 잃게 된다.

 

 

제17장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귀한 것을 바라는 것은 사람의 공통된 마음인데, 사람마다 자기에게 귀한 것이 있지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남들이 귀하게 해주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 아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이미 술로 취하고 이미 덕으로 배불렀다'하였으니, 이는 인의에 배불렀으므로 그 때문에 남의 기름지고 찰진 음식의 맛을 원하지 않는 것이며, 좋은 소문과 널리 퍼진 명예가 몸에 베풀어져 있으므로, 그 때문에 남의, 무늬가 있고 수 놓은 옷을 원하지 않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제18장

'부하를 다룰 때는 무섭게 다뤄야지 아량을 베풀거나 너그럽게 대하면 배반한다', '체벌은 필요악이다', '어느 정도의 독재는 필요하다' 등의 말을 주변에서 듣곤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말들이다.

 오랜 기간 동안 압박을 받고 속아온 사람들에게 잠시 동안 사랑과 진실을 베푼다 하더라도 그들은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사랑과 진실을 베풀어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잠시 동안 사랑과 진실을 베풀고서 그것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사랑과 진실이 의미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사람은 결국 폭력과 술수를 쓰게 된다. 처음에 가졌던 사랑과 진실은 이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제19장

잠시 인을 베풀고서 모든 것이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물 한잔을 가지고 수레에 붙은 불을 끄려는 것과 같다. 인의 참다운 가치는 오랫동안 지속됨으로써 체득되어 저절로 배어나오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20장

배움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활쏘는 법을 배우는 데에 있어서도 활시위를 당기는 정도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고, 원을 그리는 방법을 배우는데 있어서도 콤파스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진리를 배우는 데 있어서도 진리의 객관적인 표현방법인 예라든가, 인의의 일반적인 실천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를 안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할 수 없으면 안 된다. 또 표현을 잘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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