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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개인적인 견해이며 특정 교단이나 종교 전체의 입장이 아닙니다.

 

교회가 여기저기 욕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는 교회를 가지 못하게 되어서 오히려 이것이 교회에 도움을 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교회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위선적이기때문입니다. 교회안에서는 할렐루야 하나님 아멘 하다가 교회 문밖만 나오면 원래대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돈과 출세를 좋아합니다. 맨날 하는 기도가 돈달라 출세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교리나 가르침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짜증나는 것은 맨날 그놈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항상 물타기를 하면서 결론을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 부조화를 먼저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 돈주세요

제가 어렸을때 교회를 다녔을때 교회에서 맨날 하라고 했던 기도가 교회 건물을 크게 짓게 해주세요 땅사게 해주세요 이런류의 기도를 교회에서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기도하면 돈주고 교회 빠지면 돈을 뺏어가는 신이라면 교회와 점집과 다른점이 뭐가 있다는 것입니까?

 

맨날 욕먹고 있는 교회는 양적으로만 팽창을 하려고 했지 근본적인 것은 다 빠져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께 돈을 달라고 기도 하는 것이 별로라는 생각은 있습니다만 기독교 관점에서 부는 절대 나쁜것이 아닙니다. 빅데이터 시대에 성경을 형태소 분석(단어별로 갯수 세는 것)을 굳이 안돌려도 성경에 많이 나온 단어 개수 이런것들은 몇백년 동안 연구하신 분들에 의해 밝혀진 것은 성경에 두번째로 많이 언급된 것이 돈입니다.

 

예수님이 살던 아우구스투스 시대나 이때나 돈은 중요합니다. 돈은 그리고 좋은것입니다. 잘 쓰면요. 나쁘게 벌지 않고 제대로 열심히 일하고 혁신적인 물건과 서비스를 만들어서 제대로 번 돈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또한 사치 하거나 과시용 소비를 하거나 하는 용도로 쓰지 않으면 좋은 것입니다. 이런 돈은 얼마든지 벌어도 좋다는 것이 기독교의 입장입니다.

 

우리 2~30대 40대도 마찬가지고 50대도 마찬가지로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고 제대로 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여러가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이런 방법을 메뉴얼대로 잘 알려주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사회는 이모양 이꼴이 되었고 교회도 욕을 먹어 왔던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개신교는 출발은 유대교지만 지금의 모습은 종교개혁에서 왔습니다.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것

종교개혁의 핵심은 인간은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정설이라고 해서 우리가 구원 받을지 말지는 신이 결정을 했고 인간은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해야 할 일도 신이 정해 줬으니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은 열심히 해야 하고 열심히 일하고 사치하지 않고 돈을 잘 모으라는 것 또한 핵심 사상입니다.

 

그 사람이 착한 일을 했던 악한 일을 했던 모두 상관이 없이 구원 받은 사람은 구원 받은 것이고 못받은 사람은 못받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될놈 될 입니다.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착한일을 많이 한다고 천국에 갈 수 없다니요! 내용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마음에서 거부감이 드는 내용입니다.

 

이 사상은 종교개혁 이전에 교회가 면죄부를 팔면서 교회에 돈을 내거나 선행을 하면 지옥으로 갔던 영혼이 천국으로 간다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의문을 갖고 있던 많은 사람들 중 한명인 루터 교수가 '이게 과연 맞는 것 같냐?' '함 토론 해보자' 하면서 적었던 95가지 토론 주제가 마침 발명된 인쇄술을 타고 전 유럽에 퍼지면서 시작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면죄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바탕에는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만들 수 있다는 이 생각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사람의 특징이 있으니 예수님 처럼 살고 열심히 바르게 일하며 검소하게 살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명품과 좋은 차 좋은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설비에 투자하여 더 좋은 물건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행동을 하는 것 그리고 이 행동을 반복 하는것이 구원 받은 사람의 특징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본능은 게으르게 살게끔 되어 있습니다

구원을 받지 않고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존경 받고 싶은 욕구와 자아 성취를 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면서 검소하게 살고 일을 열심히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젊은 청년이 자기 자신을 벌어 먹이기 위해 열심히 살아서 돈을 모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자본주의 정신이 없다면 자본주의 시대에 돈을 모아서 자산을 가지게 되는 순간 자본이 자신을 집어삼킬 수 있습니다. 자산이 있으면 자산이 돈을 벌어옵니다. 때문에 내가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벌리게 되고 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게으른 것은 죄라고 해서 계속 열심히 일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일은 하나님이 주신 신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이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로 돌아온다는 애덤 스미스의 말도 있지만 인간이 이기적이기만 하고 윤리와 직업정신이 없다면 지금 처럼 부동산 값이 미친듯이 뛰기만 하고 사람들은 돈과 명품만 밝히면서 살 것이고 빈부격차가 심해지기만 해서 사회 꼴이 말이 아닐 것입니다.

 

애덤스미스도 독점기업이 나와서 이기적인 생각으로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의 가격을 쥐락펴락 하는 것은 반대 했습니다. 

 

부지런한 부자가 왜 천국에 못가요? 게으른 가난뱅이는 천국에 가나요 xx?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에서는 부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기 어렵다'인데 거의 못간다는 식으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지금 다니는 한국에서 가장 부자이고 부자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교회중 하나인 초대형 교회에서도 부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설교를 종종 듣습니다. 틀린건 아니죠 성경에 써있으니까요.

 

하지만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말의 임팩트가 너무 강했던 것일까요?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제대로 돈을 벌고 게으르지말고 일은 주님이 주신 것이니 열심히 해서 부자가 되라는 이야기는 들은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다고 되어 있지만 교회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대놓고 말을 하는 곳이 많습니다. 교회가 커지고 시설 좋아지고 이런 얘기들 너무 당연하게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빠지면 안식일을 안지키는 죄를 짓는 것이고 제사상을 차려놓고 절하는 것은 귀신한테 절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우리와는 조금 다르게 종교개혁 정신을 제대로 받아들여서 실제로 많은 혁신적인 기업가들이 나왔고 혁신적인 발견과 발명품들이 나와서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 할 수 있었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는 말은 부유해지면 근면, 성실, 절약하는 삶을 살면 부유해 지는데 부유해 지면 과소비도 하게 되고 덜 열심히 살게 되고 덜 성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존 웨슬리는 "부가 증가한 곳에서는 거기에 비례해 신앙의 중요한 핵심이 감소했다"고 했습니다.

 

 

기독교 국가가 아니면 다 가난한건 아니지 않나요?

일본은 기독교 국가는 아니지만 장인정신 문화로 열심히 바르게 일하며 검소하게 살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기업에 투자를 해서 근대화에 성공 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특유의 가족을 중요시 하는 문화와 희생정신으로 열심히 바르게 일하며 검소하게 살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기업에 투자해서 또 빠르게 발전 할 수 있었습니다.

 

부의 핵심을 종교가 기독교냐 이슬람교나 불교냐가 아니라 열심히 일 했는지? 사치를 하지 않았는지? 번 돈을 올바르게 투자 했는지?입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 하나님만 찾고 교회에만 빠져있고 자기가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모든걸 하나님으로 얼버무려 버리고 교회만 커질려고 하는 것 이거 자체가 이단하고 다를게 뭐가 있다는 것인지 어렸을때부터 정말 궁금했습니다.

 

아마 70년대 80년대에 신학 대학을 나와서 성작자가 되신 분들이 설교를 할 때 직업 정신, 번 돈을 재투자, 바르게 일하는 것 이런것을 사회적으로 생각을 못할 때일 수도 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분들에게 투자할 돈이 있었겠습니까 교리를 공부할 여유가 있었겠습니까.

 

이럴때야 오직예수, 믿는자 천국 불신자 지옥 이렇게 쉽게 접근 하는게 맞는 포교 방법 이었겠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커져야 신도들도 많아지고 신도들이 많아져야 포교를 할 수 있고 이런 사이클이 되다보니 점점 본질은 생각하지 않고 커지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중요한 가르침은 잊어버리고 덩치만 커진 지금의 교회들이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네 결론은 뭔데?

결론을 안내리고 '오직 주님만이 길이십니다'로 끝내는게 맘에 안든다고 앞에서 언급을 했습니다. 제 결론은 지금 이렇게 모두가 피곤함을 느끼고 힘들다고 느끼는 시대에 기독교는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열심히 일하고 게으르지 않고 돈을 사치하는데 쓰지 말라는 이 세가지 교리는 지금의 미친 집값, 빈부격차와 피폐해진 우리의 허무주의를 조금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돈을 가지신 분들이 사치를 하지 않으면 가진 사람과 못가진 사람들의 차이가 눈에 잘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산을 가지신 분들이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서 오르는 시세차익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는 대신 건전하게 본인이 잘 하고 열심히 하는 일을 더 잘 하는데 투자를 해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 하게 되면 돈을 가지신 분들도 투자한 돈이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 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부가가치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일자리도 만들어질것입니다.

 

인간이 이기적인데 이게 가능하냐 이상을 부르짖던 맑스의 공산주의가 인간의 이기심을 고려하지 않아서 실패하지 않았냐고 하실수도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여기서부터가 믿음의 영역입니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을 역행하는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구원받은 자들 뿐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신께서 소명으로 일을 주셨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것 뿐입니다. 신이 주신 소명이라고 믿는 믿음이 클 수록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투로 썼지만 성경 몇장 몇절 칼뱅의 뭔 사상,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이런 내용 쓰면 어차피 안읽어서 소용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참고한 책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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