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겪은 일이다. 작년에 잘 다니던 직장을 퇴사 하고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마련했던 신혼집도 내놓고 싱가폴로 무작정 떠났다. "해외 취업에 꿈이 있어서", "해외는 개발자 연봉이 좋다더라"등 누가 왜 가냐고 물어보면 나도 주워들은 말들을 늘어놓으며 꿈과 미래가 모두 싱가폴에 있는 것 처럼 싱가폴로 떠났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졌고 5월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싱가폴 에어라인 비행기 안에서 이제 한국으로 간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언제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할지 공백이 있는 나를 받아줄 회사는 있을지 호기롭게 해외 취업을 한다고 나갔다가 아무것도 못해보고 돌아오는 내 모습을 비웃는 사람들은 없을지 온갖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대학교때부터 알고 지내던 10학번이나 차이나는 선배님의 소개로 한 공기업에서 하는 프로젝트에 프리랜서로 6개월 일하게 되었다.

집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하고 있을때온 선배님의 전화 한통은 내가 간다 안간다 생각해보겠다 등의 여유를 부릴만한 제안은 아니었다. 조건도 너무나 좋았다. 일주일에 2일 일하고 급여는 정규직 한달치 월급이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대전까지 2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를 회식에 참여하기 위해 엑셀레이터를 밟아도 잘 나가지 않는 소형차를 끌고 초보운전인 나는 회식장소로 갔다.

 

김대리를 만났다.

 

이 회식장소에서 나는 김대리를 만났다. 그는 30대 후반에 30대 중반인 나보다 4~5살 많다고는 했지만 꽤 동안인 얼굴에 결혼해서 딸까지 있는 사람이었다. 인상은 유리상자의 안경쓴 맴버를 닮았고 개발자 같은 긱(Geek)함이나 날카로움 같은 것도 없었다.

 

자기도 전에 이런식으로 공기업과 계약을 맺고 일을 했었다면서 먼저 인사하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분과 일한다면 이번 프로젝트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회식 중 담배를 피러 따라 나갔을 때 들은 말은 이분이 들어온지 얼마 안되었고 조직에서도 왕따 비슷한 위치라는 것이다. 나는 성격도 인상도 좋아보이는 김대리가 왜 무시를 당하는지 그때는 잘 알 수 없었다.

 

처음 출근한 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서버 접속 정보 등 최소한의 인수인계를 받았다. 내가 맡은 서비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분은 이부장이라는 분이었다. 나이는 40대 중반쯤 되보이고 얼굴은 까맣고 말을 할 때 담배냄새가 났다.

 

이분도 전혀 IT의 느낌은 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IT의 느낌이라는 것은 마치 전쟁터의 전사와 같은 느낌을 말한다. 전사들이 언제든 칼을 뽑고 적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듯이 언제든 터미널을 열어서 서버의 로그를 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역시나 몇가지 기초적인 질문들을 물어 보았으나 모르는 것 같았고 이전 업체에게서 받았던 메모만 전달 해주었다. 듣기로 이분은 2주 후에 다른 부서로 옮기신다고 했다. 이렇게 기초적인 것도 모르시는 분은 차라리 다른 부서로 가시는게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때 부터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 부서는 왜 이렇게 인사 이동이 많을까?'였다.

지난번 회의때 방문 했을 때도 전에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분이 다른 곳으로 가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나마 많이 아신다는 이부장님도 다른 곳으로 가신다고 했다. 나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소름이 돋았다.

 

"김경록 과장님 이 이슈를 먼저 처리 해주시겠습니까?"

 

업무 협의를 하면서 가장 먼저 받은 요청이었다. 김대리는 내가 할 수 없는 본인이 맡아야 하는 업무중에 가장 손이 많이 가면서도 티가 안나는 업무를 나에게 주려고 했다. 나같은 프리랜서를 고용하는 이유는 현재 조직에 이 업무를 처리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것은 받아들이는게 크게 거부감은 없다.

하지만 김대리가 맡기려는 일은 외부에서 접근이 불가능해서 리모트로 근무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뭔가 착각하시나본데 그건 과장님 사정이고 과장님이 이 일을 처음 해보셔서 그런가본데 과장님 사정은 저희가 고려할게 아니에요"

 

착해보이는 동안 외모에 동그란 안경을 쓴 김대리는 말했다.

 

김대리는 보기보다 선을 잘 긋는 사람이었다. 그 선이라는 것은 갑과 을을 의미했다. 일을 처리해줄 전문가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갑은 돈을 주고 시킬뿐이고 을은 돈을 받고 일을 할 뿐이다. 갑 입장에서는 돈을 줬으니 알아서 일을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돈을 받는 입장에서는 돈을 받았으니까 갑이 신경쓰지 않게 일을 잘 해줘야 한다.

 

나를 고용한 회사와 계약을 맺은 이 공기업의 IT부서의 히스토리는 전국시대 만큼 파란만장 했다. 이 부서에 오래 붙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일을 많이 아는 담당자도 지난달에 부서를 옮겼고 그분과 같이 일을 했던 이부장도 부서를 옮기는 상황이었다.

 

이 조직은 자신들 곳간의 열쇠가 어디 있는줄도 몰랐다. 서버의 접속 정보라던지 어플리케이션의 현재 상태라던지 한개도 몰랐다. 뭐가 어딨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이전 업체에 전화 해서 물어보세요"

 

김대리는 더 심했다. 다른 하청 업체가 데이터 서버에 문제가 있어서 확인 해보라는 메일을 김대리에게 보냈는데 김대리는 그 메일을 그대로 포워딩 했다.

나도 김대리도 이 업무는 비슷하게 시작을 했다. 김대리도 당황했을 것이다. 이 서비스가 무슨 서비스고 어디에 박혀있는지도 모르는데 문제를 확인해보라고 했으니 머리가 아팟을 것이다.

 

하청 업체는 마찬가지로 모른다. 갑이 이런게 있다고 알려준 적도 없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전에 하던 업체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말은 내 자존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여태까지 그것도 파악 안하고 뭐하셨어요? 일 안하세요?"

 

이런 말이었다. 두꺼운 유리벽에 머리를 쾅 부딪힌 것 같았다.

 

이게 첫번째 사건이었고 김대리에게 깊은 분노를 느끼게 된 일이자 마지막 김대리와의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나를고용한 회사의 PM님으로부터 메일이 하나 전달이 되었는데 내 분야도 아니었고 인수인계 받은 적도 없는 일이었다. 오렌지가 들어간 회사에서 납품한 지도 서비스였는데 그 서비스를 유지보수하는 회사에서 뭐가 잘 안되니까 확인 해달라는 메일이었다.

 

내가 해본 분야는 아니었고 나를 고용한 회사 그리고 김대리의 회사에서도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게 뭐하는 서비스인지 로그인이라도 해보고 어디부터 안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이 메일을 보낸 김대리에게 '담당 업체가 어디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김대리 이자... 아니 김대리가 화를내더니 '들어오신지 5개월 지나셨는데 여태 그것도 파악 안하고 뭐 하셨어요?'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무슨 아키텍처를 물어본것도 아니고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물어본게 그렇게 잘못이란말인가?

 

이 일은 김대리 본인도 몰라서 그냥 토스한거였는데 역으로 물어보니까 갑 업체 입장에서 가오(체면?)도 안살고 짜증도 나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듣자마자 화가 나서 이제 더이상 참기만 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따졌다. "김대리님이 하시는 일이 이메일 토스하는 일인가요?" "그러면 김대리님은 왜 있는거죠?" 했더니 정곡을 찔렸는지

 

"지금 하신 얘기 그대로 이메일로 보내세요"

 

라고 했다.

김대리는 을도 아니고 병인 나에게 갑의 파워를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이정도 하면 깨갱 하겠지 하고 갑이 쓸 수 있는 파워인 딴지걸기와 문제삼기 사인 안해주기의 권력을 휘두르려고 했다.

 

나는 못보낼 것도 없었다. 어차피 프리랜서이고 기간도 얼마 안남았고 슬슬 이쪽 일에 정나미가 떨어지기 시작한 차에 나갈때 나가더라도 꿈틀이라도 하고 나가야겠지 싶었다. 속으로 '이 xx 존x 치사한 xx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메일을 썼다.

 

'이 시스템에 대해 문서를 본 것도 없고 빨리 해결하기 위해 담당 업체가 어디인지 물어본 것이다. 안 알려주니 나는 담당자가 궁금해서 물어봤던 것이다'

 

메일을 보내고 나서도 '괜히 화냈나?', '좀 더 참을껄'이라는 후회가 들고 다음에 갈 회사도 없었던 상황이라 많이 쫄렸다. 피곤해서 방에 들어가 누워있으니 김대리한테 전화가 왔다. 자기가 심하게 말한 것 같긴 한데 을 입장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 본인도 잘한게 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나보다.

 

 

병원에 몸이 아파서 갔는데 의사가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자세하게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MRI를 찍어봐야 할 것 같은데 비용은 50만원 정도 듭니다. 검사결과는 1주일 후에 나옵니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갔을 때

 

"선생님 전문의 되시기까지 20년씩이나 공부 하셨으면서 이것도 모르고 뭐하셨어요?"

 

이런 말을 김대리는 할 수 있을까?

 

"이 공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영혼이라는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기 집에 곳간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곳간 주인이었다.

사고만 안치면 해고가 안되는 공기업이라서 그런지 어떻게는 책임은 미루고 어려울 것 같으면 부서를 옮기고 하청 업체 멘탈을 부숴서 열받아서 일하게 하는 방식으로 일을 했다.

이곳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를 고용한 회사로부터는 좋은 대우를 받고 높은 시급을 받았으나 갑 업체에서 떨어지는 불호령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들은 왜 자꾸만 일어나는 것일까?'

이런 일이라는 것은 이 일을 가장 오래 한 담당자가 버티고 버티다가 퇴사를 하고 인수인계가 잘 되지 않아서 그 다음 사람이 또 고생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 온 사람도 또 힘들게 일을 하다가 감정이 상하고 퇴사를 한다. 감정이 상한 사람에게 마무리와 인수인계를 완벽하게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면 그 다음에 오는 사람은 고생을 하고 이게 반복 된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사람들마다 천차 만별일 것이다. '자아 실현을 위해서 한다', '태어났으니까 한다', '돈 주니까 한다' 등 여러가지 답변이 있을 것이다. 김대리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일까? 그저 이 공기업에 붙어 있어서 월급을 받기 위함일까?

 

갑질을 한다면 그 화는 갑과 을에게 돌아온다.

나는 김대리의 선긋는 화법에 질려서 오래 알았던 선배님이 소개 해준 일이었지만 선을 긋기 시작 했다. 서버 어플리케이션에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에러가 있다면 수정을 해주기도 하고, 설계가 너무 복잡하거나 확장하기 어려운 형태라면 바뀌는 것은 없지만 리팩토링을 해서 확장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개선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개선한 부분에 대해서 나만 뿌듯해 하는 등 자기 만족을 위해 남에 회사의 프로그램을 내 시간을 들여서 개선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일이 있고 나서는 이러한 개발자로서의 의욕이 완전히 꺾였다.

 

개발자로서의 장인정신 같은 것 그리고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달아났다. 계약 기간이 남은 3주 동안은 내가 해야할 최소한의 일만 하기로 했다. 이러면서 일하는 성취감과 재미가 모두 떨어졌다. 6개월짜리 프로젝트였지만 정규직으로 입사를 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나는 퇴사를 했을 것이다.

 

다행히 김대리의 갑질 멘트에 마음이 상한 것은 프로젝트의 막바지였다. 중요한 작업들은 진행을 하고 서버에 모두 업로드 하고 반영을 한 이후의 일이라서 나는 이 프로젝트에서는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일을 했다.

어제는 인수인계를 하러 내려가서 한마디 안부도 물어보지 않은채 일 얘기만 하고 돌아왔다. 인수인계를 받는 분도 받고 싶지 않은데 마지못해 받는 눈치였다.

 

이 공기업에서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간 이전 담당자와 이부장도 나랑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조직에서 경험많은 사람이 떠나면 역시나 곳간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떠나면 곳간 열쇠가 어디있는지는 계속 모르게 될 것이지만 "그것도 모르고 뭐했느냐"는 얘기는 누가 안들었으면 좋겠다.

 

 

728x90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