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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아주 잘하시는 분들을 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늘은 퇴근하고 운동을 갔다오니 저녁을 차려놓고 피곤했는지 부인이 곤히 자고 있습니다.

 

앞에 포스트에서도 몇번 언급을 했지만 요즘 제 부인은 5개월째 열심히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전직 마케터였던 부인은 전에 다니던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소위 갈아마시기로 부림을 당하며 밥먹듯한 야근과 11시 넘어서 퇴근하는 날도 몇번 있을 정도로 회사에서 쪽쪽 뽑아 먹었습니다. 돈 주고 일을 시키는 것이지만 병날정도로 일을 시키는건 너무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인은 요령을 피우면서 회사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업무강도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쪽 업계가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넘나 안쓰럽고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개발쪽으로 전향을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권했습니다. IT쪽은 근 10년간 불황이 없었습니다. 저도 물론 갈린 세월이 있긴 하지만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그런적이 과연 있었나 싶었습니다. 갈린적이 있었다면 월급도 잘 받고 좋은 근무 환경에서 버틸만한 업무 강도였습니다. 제가 야근을 했던건 입사 1년차에 모 야쿠르트회사 SI를 할 때 고객님께서 "왜 님들은 야근을 안하시냐"고 할 때 잠깐 4개월 정도 저녁먹고 와서 9시에 퇴근한 적이 있긴 합니다.

 

그 때 고객님의 갑질을 생각하면 신입이라 별로 당한건 아니지만 잊고 있던 슬픈 기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그렇게 어려운 프로젝트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책임을 질 것도 없었구요.

 

잠깐 샜는데 제가 야근을 한 세월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케터인 제 부인은 엄청나게 갈렸습니다. 이렇게 몇달 더 하면 건강이 안좋아질 것 같아서 당장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일하다 아픈게 가장 서럽지 않습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이 힘든걸 보는 것도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던 중 정부에서 하는 빅데이터 교육이 있어서 한번 들어볼 것을 권했습니다. 부인은 바로 지원을 해서 서류, 면접을 통과 하여 과정을 등록하고 IT업계 입문을 시작 했습니다. 코로나라서 온라인 강의 듣고 인턴도 하면서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마케터로 일할때는 과장급이고 인턴한테 업무지시도 내리고 팀장급으로 일을 했는데 아직 인턴도 안해본 대학생들과 님님 하면서 회의하고 친하게 지내려니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저보고 해보라고 하면 글쎄요 과연 할 수 있었을지 저는 자신이 없네요.

 

그렇게 3개월 4개월이 지나갔습니다. 부인은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나름 산전수전 IT업계에서 계속 있었던 저는 저게 공부를 하는것인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일하던 사람이 집안에서 집안일만 하게 되면 집안에 주로 있어야 하고 지금 사는 집이 넓지도 햇볕이 잘 들지도 않아서 무력감이 올 수도 있겠지 싶었습니다. 그래도 공부라도 하고 밖에 나가고 하면 집에만 있는 것 보다는 괜찮겠지 하고 그러려니 했습니다.

 

사실은 더 큰 그림이 있긴 있었습니다. 부부 개발자라던지 부인은 기획 저는 개발 이런식으로 같이 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IT업계는 주로 프로그래밍 언어로 기계와의 대화를 많이 하기 때문에 말로 못할 공허함도 있었던 것도 이유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가끔은 운전을 가르칠 때 처럼 '공부를 하는거냐 마는거냐', '할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라', '힘들면 왜하냐' 등 뭐라고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그만 안두고 꾸준히 하더니 요즘은 좀 늘었습니다.

 

부인이 짠 event listener code

 

제가 생각했을 때 프로그래밍 공부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성취감을 느꼈냐 못 느꼈냐'라고 생각합니다. 쉬운 문제지만 나에게는 어려운 그런 코딩을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하나 해결을 했을 때의 그 기쁨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 맛을 보는 순간 공부의 몰입도와 성취도가 전에 비해 많이 올라갑니다.

 

타고난 적성과 모든 능력들이 코딩에 특화된 분들은 또한 다른 세계를 살고 계시겠지만 그저 밥벌이나 할까 싶었던 비전공자였던 저도 아직 갈길이 멀기는 하지만 먹고는 살고 있습니다.

 

부인이 공부를 잘 마쳐서 취업이 되거나 하면 과거에는 이런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꼭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봄에 새싹이 언 땅을 뚫고 초록 잎을 빼꼼 내보이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 짓게 됩니다.

 

부인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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