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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읽어보자 - 제2편 위정편 1장 ~ 24장

 

 

논어의 학이, 위정 등 각 편의 이름은 각 편의 1장에 앞 두글자를 따와서 지었습니다. 학이편은 학이시습지가 1장의 첫 두글자이고 위정편은 위정이덕으로 시작합니다. 위정이덕은 정치하기를 덕으로써 하는 것 입니다.

사랑은

'내 것'이라는 생각은 어떤 경우에라도 착각이다. 순수한 사람은 착각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처음 만날 때와 같다. 언제나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일관되는 삶은 언제나 신선하다. 그런 마음을 표현하기만 하면 다 시가 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욕심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보고, 채워주지 못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오직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사람을 제대로 본다. 훌륭한 사람을 훌륭하게 보고, 나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본다. 순수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에 대해 읊은 것도 시이고, 나쁜 사람에 대해 읊은 것도 시다. 그러므로 시를 읽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훌륭한 사람을 닮아 가고 나쁜 사람을 경계한다. 공자가 아들에게 제일 먼저 시를 읽도록 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3장

자왈 도지이정하고 제지이형이면 민면이무치니라 도지이덕하고 제지이례면 유치차격이니라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공치사를 하지 않는다.

 

4장

다른 사람이 말하는 배움이란 남을 이기기 위한 지식 쌓기가 대부분이지만, 공자가 말하는 배움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을 이긴 사람도 늙어죽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에게 참다운 행복은 없다. 참다운 행복은 늙어죽는 길에서 벗어날 때 찾아온다. 공자가 말하는 배움은 참다운 행복을 찾는 길이다. 그 길은 자기를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의 모든 고통은 욕심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욕심을 없애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예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다. 예를 지키면 욕심이 줄어든다. 욕심은 아교처럼 끈적끈적하다.

 

욕심은 집착하는 마음이다. 욕심이 줄어들어 하늘마음보다 작아질 정도가 되면 심하게 집착한다.

 

욕심을 적게 채울 수록 욕심은 힘이 강해진다. 마치 알콜 중독자가 술을 끊으면 금단현상이 발생 하는 것과 같다. 학문은 알코올 중독자가 금주하는 것과 같다. 중독자가 금주할 때는 심한 유혹을 받는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술을 마시면 그간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처럼, 학문도 욕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 이룰 수 없다.

 

이립은 입어례 즉 예를 실천하는 삶에 서 있었다는 말이다.

 

욕심에 유혹받지 않게 되면 학문은 탄력을 받는다.

 

 

5장

예를 모르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으므로, 공자는 사람들에게 우선 예를 권한다.

 

6장

맹무백이 문효한대 자왈 부모는 유기질지우니라

 

맹무백이 효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로 하여금 오직 그 자녀의 질병만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다."

 

7장

자유 문효한대 자왈 금지효자는 시위능양이니 지어견마하여도 개능유양이니 불경이면 하이별호리오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효는 부모봉양 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나 말까지도 다 봉양하고 있다. 공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8장

자하 문효한대 자왈 색난이니 유사어든 제자복기로하고 유주사어든 선생찬이 증시이위효호아

부모의 봉양에 충실한 것이 효의 전부가 아니다. 참다운 효는 부모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10장

욕심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최선을 다하는 경우에는 성실하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 하나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 일을 하게 된 동기나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돈 버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가는 아무리 성실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성실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성실하게 보이는 것은 욕심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욕심에 빠져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중독자다. 중독자는 노예다.

 

중독자란 욕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도박이나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도 있다. 참으로 성실한 사람은 행복하고 편안하지만, 중독자는 그렇지 않다. 성실해 보이는 사람 중에서 참으로 행복하고 편안한 사람만이 참으로 성실한 사람이다.

 

11장

스승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삶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파악하여 그것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개개인은 모두 남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사랑도 해야 하고 쥐직도 해야 한다. 가정을 가져야 하고 자녀도 낳아야 한다. 그러면서 늙고 병들어 죽어간다. 이런 삶의 과정에서 개개인은 모두 행복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 할 수 있을까? 과거에 행복했던 성인들의 삶을 공부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

 

12장

군자는 불기(器)니라

 

군자는 특정한 형태가 있는 그릇 같이 그 역할만 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그릇이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 몸을 말한다. 즉, 내가 남자라면 나는 여자가 아니며, 내가 현대인이면 고대인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삶에서는 나는 왜 여자가 아닐까, 나는 왜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나는 왜 부잣집에 태어나지 않았을까, 나는 왜 죽을 수밖에 없는가 등등의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하고, 삶은 비극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군자의 삶은 그렇지 않다. 하늘의 뜻에 따라 살기 때문에 삶의 내용이 하늘이다. 하늘처럼 사는 사람은 나는 나이기도 하고, 동시에 너이기도 하다. 나는 만물이고, 하늘이고, 우주다. 나는 태곳적부터 존재했고, 앞으로도 무궁히 존재한다. 나는 시간적·공간적 제한에서 벗어난다. 나의 몸이 초야에 묻혀 평생토록 이름 없이 살아도 불만이 없다. 절대 자유를 누리는 행복한 삶 그 자체이다.

 

소인은 몸만 챙기는 사람이다. 소인이 목표로 삼는 것은 오직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남과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첫째, 자기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서, 둘째 어릴 때부터 그 일을 시작하고, 셋째 그 일만 하는 것이다.

 

군자는 그릇처럼 살지 않는다.

 

 

14장

군자는 두루두루 어울리지, 특정한 사람만을 따르지는 않는다. 소인은 특정한 사람만을 따르고 두루두루 어울리지를 않는다.

 

15장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사람들은 많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돈은 좋은 것이다', '명예는 좋은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이 그것이 왜 좋은 것인지, 그 의미에 대해 잘 헤아려 보지 않는다면, 맹목적으로 돈과 명예만 추구하는 답답한 인간이 되고 만다. 답답한 인간은 고정관념의 노예다. 돈의 노예이고, 명예의 노예이다.

 

16장

자왈공호이단이면 사해야이니라

학문 중에도 이단이 있다. 몸 챙기는 것만 주로 가르치는 것도 이단이고, 마음 챙기는 것만 주로 가르치는 것도 이단이다. 이단을 공부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만 하고 다른 것을 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이단의 반대는 중용이다. 중용이란 몸과 마음을 두루 챙겨서 조화롭게 사는 것이다.

 

17장

자왈유아 회여지지호인저 지지위지요 부지위부지시지야니라

아는것은 아는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18장

자장이 학간록한대 자왈다문궐의요 신언기여즉과우며 다견궐태요 신행기여즉과회니 언과우하며 행가회면 녹재기중의니라.

 

진리는 욕심을 비울 때 찾아온다. 자장은 욕심이 많았다. 남에게 과시하고 싶어 참지 못했다. 자장은 재주가 많고 유능하다. 그런 사람이 욕심을 버린다면 남들이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벼슬자리는 저절로 얻어진다.

 

모든 것에는 인과 연이 있다. 벼슬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는 것은 인이고, 벼슬자리를 얻게 되는 계기는 연이다.

 

19장

애공이 문활하위즉민복이니잇고 공자대왈거직조저 왕즉민복하고 거왕조저직즉민불복이니이다.

백성들을 복종하게 하려면 정직한 자를 굽은 사람 위에 올려놓으면 백성들이 복종하며, 굽은 사람을 등용하여 정직한 사람 위에 올려놓으면 백성들은 복종하지 않습니다.

 

 

 

21장

정치에서 정이란 바르지 않은 것을 바르게 만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욕심에 끌려다니는 불행한 사람이 본심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욕심 많은 사람들의 투쟁장소인 이 사회를 한마음으로 살아가는 군자들의 낙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제24장

자왈비기귀이제지는 첨야요 견의불위는 무용야니라

 

자기의 귀신이 아닌데 제사지내는 것은 아첨하는 것이고 의로운 일을 보고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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